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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2. 22世 〉28. <부정공>처사휘연홍행장(處士諱淵洪行狀)
1. 문헌 목록 〉22. 22世 〉30. <부정공>원은공휘중섭(연성)묘갈명(原隱公諱仲燮(淵聖)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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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부정공>연당처사휘완섭행장(蓮塘處士諱完燮行狀)
蓮塘處士諱完燮行狀 公諱完燮字瑞允蓮塘其號也趙氏系出玉川上世有諱璋官門下侍中始顯於譜三傳而生諱元吉學者稱農隱先生以定策勲玉川府院君諡忠獻是生諱瑜號虔谷官副正入我朝屢徵大官不就是生諱崇文號竹村 端廟忠臣諡節愍寔五世以上也曾祖諱鎭龍號湛軒行義鳴世祖諱兌浩考秉哲妣昌寧丁氏時龍女昌原君寬后公以 高宗庚辰二月二十五日生于龜湖世庄形容端正不逐群兒戯遊見者己知其爲非常人也七歲遭父喪能行代哭以致吊者稱頌焉及長潜心勉學不煩程督而迎刄解之書册必整頓曰此吾先子所玩什物必戒飭曰此吾先世遺業持身以律事母以孝得異味則必先焉出入則必禀焉嘗以不承親顔爲恨每當諱辰哀號哭泣感動家人於是大夫人日益安之親戚日益信之矣歲戊午十二月二十五日卒于寝享年三十九前一日召家人吿之曰我早孤餘生偏養老母不得養此何人斯願善侍善養不及他事訃聞知與不識莫不嗟悼可見入人者深矣以是月葬于先考墓下艮坐原配南平文氏參奉錫煥女三憂堂益漸后己卯三月六日生丁亥十月十日卒莊淑有壺儀墓與公同崗異兆子休賢休千休重女適尹俊根孫勲卓勲春勲又勲木川張寅洙星山李相勲南原梁在河長房出伯勲大勲玉勲相勲幸勲日勲東勲榮勲龍勲朴昌碩二房出宗勲咸豊李占行全州金俊錫三房出尹鍾烈朾烈承烈洞烈其外孫也噫公事親之節正家之道可以措諸事業而年命局之未展素蘊何其積厚而施短歟可勝惜哉雖然餘慶所及孫曾甚蕃此可尚也己其胤休賢屬余記之屢辭不獲畧草如右以竢作者採擇焉 歲戊申三月清明節 傍孫 東勲 謹狀 연당처사휘완섭행장(蓮塘處士諱完燮行狀) 공의 휘는 완섭이요, 자는 서윤(瑞允)이며, 호는 연당이고, 옥천 조씨인데 상세에 휘 장(璋)이 문하시중으로 비로소 보첩에 나타난다. 三전하여, 휘 원길(元吉)은 학자가 농은 선생이라 칭하고 정책훈으로서 옥천 부원군에, 시호는 충헌이요, 생휘 유(瑜)의 호는 건곡에 벼슬은 부정인데, 조선에서 자주 대관으로 불러도 나가지 아니하였으며, 생(生) 휘(諱) 숭문(崇文)의 호는 죽촌이요, 단묘 충신에 시호는 절민이니 이가 곧 오세 이상이었다. 증조의 휘는 진룡(鎭龍)이요, 호는 담헌이며, 행의가 세상에 알려졌으며, 조의 휘는 태호(兌浩)요, 고의 휘는 병철(秉哲)이며, 비는 창원 정씨(昌原鄭氏) 시룡(時龍)의 따님으로 창원군 관(寬)의 후손이다. 공이 고종(高宗) 경진년(庚辰年一八八○) 二월 二十五일에 귀호 세장에서 출생하였는데 형용이 단정하여 뭇 아이의 희롱하고 노는 것을 따르지 아니하니 보는 자마다 이미 비상한 사람이 될 것을 알았다. 七세에 아버지 상사를 만나 능히 代哭을 행하여 조문온 자의 칭송을 받았다. 장성함에 마음을 조용히 하여 학문을 힘써 정독 아니하여도 칼날 놀리듯 해득하고 서책을 반드시 정돈하면서 말하기를 「이는 우리 선조께서 보시던 집물이다」 하고 반드시 경계하고 말하기를 「이는 우리 선세의 유업이다」 하였다. 몸가짐에 규율이 있고 어머니를 효도로서 섬기며 색다른 음식을 얻으면 먼저 드리고 출입할 때는 반드시 아뢰며 일찍 어버이를 얼굴 못 본 것을 한하여 항상 제삿날을 당하면 슬피 부르짖어 곡음하며 집안 사람을 감동하게 하니 이에 대부인이 날로 더욱 편하고 친척이 날로 더욱 신임하였다. 무오년(戊午年一九一八) 十二월 二十五일에 향년 三十九세로 정침에서 별세하였다. 하루전에 집안 사람을 불러 말하기를 「내가 일찍 부친을 잃고 홀로 노모를 봉양하는데 끝까지 봉양치 못하니 이 무슨 사람인가, 원하건대 착실히 모시고 잘 봉양하라 하고는 다른 일은 말하지 아니하였다. 부음이 전해지자 알고 모르고간에 슬퍼 아니한 자가 없으니 가히 깊이 인망을 얻은 것을 보겠도다. 이 달에 선고 묘하 간좌원에 안장하였으며, 부인은 남평 문씨(南平文氏) 참봉 석환(錫煥)의 따님으로 삼우당(三憂堂) 익점(益漸)의 후손이다. 기묘년(己卯年 ) 三월 六일에 출생하여, 정해년(丁亥年) 十월 十일에 졸하였고, 씩씩하고 맑은 규범이 있었는데 묘소는 같은 언덕에 좌만 다르다. 아들은 휴현(休賢) 휴천(休千) 휴중(休重)이요 딸은 윤준근(尹俊根)의 처며, 손자 훈탁(勲卓) 춘훈(春勲) 우훈(又勲)과 목천 장인수(張寅洙), 성산(星山) 이상훈(李相勲) 남원 양재하(梁在河)의 처는 큰아들 소생이요, 백훈(伯勲), 대훈(大勲), 옥훈(玉勲), 상훈(相勲), 행훈(幸勲), 일훈(日勲), 동훈(東勲), 영훈(榮勲), 용훈(龍勲)과, 박창석(朴昌碩)의 처는 둘째아들 소생이요, 종훈(宗勲)과 함풍(咸豊) 이점행(李占行), 전주(全州) 김준석(金俊錫)의 처는 세째아들 소생이며, 윤종렬, 정렬, 승렬, 형렬은 그 외손이다. 아, 공의 어버이 섬긴 절차와 집안을 바르게 한 도리는 모든 사업에 베풀 것인데 나이와 시운이 그렇지 못하여 포부를 펴지 못하였으니, 어찌 두텁게 쌓아 가지고 엷게 베풀었는지 애석하다. 비록 그러나 남은 경사에 의하면 자손이 번성하니 가히 가상하도다. 그 윤자 휴현이 나에게 기록하여 달라 부탁함으로 여러번 사절하여 부득이 하여 대략 위와 같이 초하여 작자의 채택을 기다리기로 한다. 방손(傍孫) 동훈(東勲)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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